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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적자시공 강요하는 입찰제도

보도일자 2011-06-29

보도기관 건설경제

최근 최저가낙찰제 공사의 적자 시공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건설업계의 의견을 빌리면, 최저가낙찰 공사의 80% 이상이 실행원가 이하로 낙찰됐다. 더구나 최근에는 물량내역 수정 방식이 가미되면서 적자 수준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따라 최저가낙찰제 공동도급에 참여한 지역 중소업체가 수익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비용을 토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적자 시공이다 보니 공동도급에 참여한 모든 업체가 손실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적자 수주는 원도급업체뿐만이 아니라 하도급업체에도 큰 시련으로 다가온다. 하도급업체는 최저가 공사에서 수익은 고사하고, 적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가 되고 있다. 그러니 올바른 시공을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산재다발 사업장의 90%가 최저가낙찰제 현장이라는 사실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일부에서는 적자 수주란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공공공사 입찰은 경쟁도 심하고, 일정 기간 동안 실적이 없으면 차후 입찰 참여가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주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더욱이 건설산업정보센터에 따르면 종합건설사의 27%가 지난해 단  한 건도 수주를 못했다. 100대 건설사마저도 30% 정도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상태다. 당연히 손해를 보더라도 수주가 불가피한 형국이다.

 최저가낙찰제에서 적자 수주가 발생하는 또 다른 원인은 입찰제도 자체에 있다. 최저가 공사의 낙찰률을 보면, 예정가격이 후(厚)하건 박(薄)하건 항상 70% 언저리에서 낙찰된다. 또, 입찰자의 투찰가격도 항상 70% 언저리에 집중된다.

 그 이유는 현행 최저가낙찰제의 저가심사제도에 있다. 공사를 30여개 세부공종으로 분류하고, 공종기준 가격의 80% 미만인 부적정 공종이 6개 이내여야 한다. 적자 여부를 제쳐놓고, 심사지침에 따라 전략적으로 투찰하다 보니, 모든 입찰자의 투찰가격이 70% 초반에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예정가격이 형편 없이 낮더라도 70% 초반에 투찰해야 낙찰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덤핑 심사를 통과하는 70%의 낙찰률은 성실 시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최저가 공사의 낙찰률은 최근 5년간 70% 내외로 거의 변화가 없다. 그런데 낙찰률 산정의 기초가 되는 예정가격은 상당히 낮아졌다. 과거에는 표준품셈을 활용해 예정가격을 산정했으나, 최근에는 실적단가를 적용하는 비율이 30%에 달하고 있다.

 실적단가는 최저가 낙찰가격을 토대로 축적되기 때문에 실행예산을 밑도는 수준이다. 더구나 최근 5년간 주요 공종의 실적단가는 5% 이상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물가변동을 고려한 건설공사비 지수는 40% 가까이 상승했다. 철근 가격만 해도 5년 전에는 t당 5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80만원을 웃돌고 있다. 기계경비를 좌우하는 경유가격은 ℓ당 1100원에서 1800원으로 상승했다. 즉, 실적단가가 현실과 한참 거리가 먼 가격으로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예정가격 작성 시 실적단가를 30% 적용한다면, 이론적으로 낙찰률이 80% 이상이 되어야 5년 전의 70% 낙찰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최저가 공사의 실질 낙찰률은 최근 5년간 10%포인트 이상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술적으로 보더라도 적자 수주가 쉽게 예견된다. 심지어 어느 정도 원가가 보장된다고 여겨지던 ‘적격심사’ 낙찰 공사에서도 최근에는 일부 적자시공이 나타난다는 의견도 있다.

 공공공사 입찰에서 성실시공을 담보하려면, 실행원가 이상으로 낙찰률이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정가격 작성에 활용되는 실적단가가 현실화돼야 한다. 또, 조달청에서 발주자 설계가격을 인위적으로 삭감해 예정가격을 만드는 관행도 사라져야 한다.

 최저가낙찰제가 적자 시공의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에서 100억원 공사까지 최저가낙찰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건설업계가 시끄럽다. 견실한 지역 중소업체마저 적자 수주가 불가피해지면서 소위 ‘승자의 저주’가 현실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나아가 행정안전부에서는 최적가치낙찰제를 도입하면서 예정가격의 75% 전후에서 낙찰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75%의 낙찰률이 적자 시공이라는 점을 모른다는 의미다. 실적단가 적용이 보편화된 외국 사례를 보면, 대부분 90%를 넘어서 낙찰률이 형성된다. 심지어 예정가격을 넘어서 낙찰되는 경우도 있다.

 공공공사 입찰에는 당연히 가격 경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자 시공을 강요하는 것이 공공조달의 목표라고는 볼 수 없다. 낙찰되었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준공해야 하는 것이 도급계약의 원칙이다. 건설업이 위험한 직업이라는 지적이 새삼스럽게 상기되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