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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시론] 주택시장 판이 바뀌고 있다

보도일자 2011-11-18

보도기관 건설경제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라는 의미의 ‘마지노선’은 잘 알려진 용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지루한 참호전을 거듭하며 독일을 막아냈다. 이후 프랑스는 다시 있을 독일의 공격에 대비해 1차 세계대전의 성과인 참호를 중심으로 강력한 요새를 구축했다. 10여년 동안 160억프랑을 들여 750㎞에 달하는 난공불락의 참호를 구축하고 육군장관인 마지노의 이름을 땄다.

   그러나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발발 4주 만에 독일에 점령당했다. 독일은 마지노선이 아니라 산림지역인 아르덴 숲으로 프랑스를 공격한 것이다. 게다가 독일은 기존의 참호전이 아니라 전차와 폭격기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전투의 방식, 전투의 판을 바꿔버렸다.

 주택시장에도 마지노선은 존재한다. 공급시장에서는 분양가상한제가 대표적이다. 2009년 2월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2011년 수도권 주택가격은 2008년 수준까지 하락했다. 수도권은 분양물량이 적음에도 미분양은 정체되고 있다. 지방 미분양이 큰 폭으로 감소했으나 이는 20∼30%의 할인분양 효과가 적지 않다.

 이러한 시장상황을 반영해 분양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지방이라 할지라도 기존주택보다 높은 가격의 분양주택이 판매될 가능성은 낮다. 신규주택 가격을 통제해 주택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분양가상한제의 정책목표도 정책효과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신상품 개발로 혁신이 필요한 주택시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는 이번 국회에서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수요 측면을 보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는 한시면제라는 임시방편을 통해 지키고 있다. 다주택자는 주택시장에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라는 인식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의 주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수도권 자가보유율은 최근 2년간 큰 폭으로 감소(2006년 56.8%, 2008년 56.6%, 2010년 54.6%)했다. 관점을 바꿔 해석하면, 자가보유율 감소는 다주택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2008년 이후 수도권 주택시장은 이렇다 할 가격상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다주택자들이 늘어났으나, 과거와 같은 시세차익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수요는 증가하고 공급은 줄어 불안정성이 확대된 주택임대차시장에서 민간 공급자로 역할하며 임대주택을 공급해왔다.

   또한, 전국 자가보유율은 60% 수준이다. 자가 거주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추정해도 전체 가구의 40%는 임차시장을 활용해야 하고 낮은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고려하면 다주택자의 비중은 35% 수준에 육박한다. 임대차 시장에서 다주택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 공공의 재정여력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임대차 시장에서의 공급자라는 다주택자의 순기능은 아직까지 한시적일 뿐 근본적인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도 과거 방식을 향유하고 싶어한다. 최근의 입주물량 부족을 외환위기 이후의 경험에 비춰 시장을 해석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공급부족에 따라 시차를 두고 주택가격이 급등했으므로, 가까운 미래에 수도권 시장도 주택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기대다. 물론, 수급불안은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공급감소의 규모를 어떻게 추정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과거와 같은 잣대로 수급을 진단한다는 것은 오류를 확대시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지방시장의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고주택시장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하고 거래량도 증가했다.

 그러나, 신규주택 시장도 같은 온도로 호조세를 보였는지는 꼼꼼히 분석해 봐야 한다. 저가매물 위주의 상승세로 신규주택의 분양가는 낮고 신규공급 물량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4분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분양물량이 집중되고 있어 예상보다 빠르게 공급초과 상태에 빠지며 상승세가 둔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과거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주택시장의 판은 바뀌고 있고 과거의 방식으로 시장에 대처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총량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고 이는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가격급등기에 사용했던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고가주택사업 모델은 앞으로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주택수요는 시세 차익보다는 실거주 목적이 주를 이룰 것이며, 이는 신규주택, 재고주택 모두 가격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임을 시사한다.

 과거와 같은 급격한 주택가격 상승을 대비하는 정책이나, 전망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는 기대하는 바는 다를지라도 변화하는 시장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는 실질적 동료인지 모른다. 그런데 쳐들어 오지도 않을 적을 기다리며 마지노선을 지키고 있는 프랑스 병사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