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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경제 민주화보다 중요한 것

보도일자 2013-02-22

보도기관 건설경제

전쟁터에서 소대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 A중사와 B하사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 육군본부에서 소대장의 뜻과 상관없이 C중사와 D하사를 배정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또, 소대장에게 C중사와 D하사를 평가할 권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제대로 된 전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원하는 전투원을 구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휘통솔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설업의 현실을 보면, 경제민주화나 상생이란 기치아래 이러한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 전기공사를 들 수 있다. 전기공사는 건축 시공과 연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콘크리트 공사 시 필요한 곳에 배전반을 묻고 천정이나 마감공사 이전에 배선을 완료해야 한다. 그런데 발주자가 전기공사를 따로 입찰하면서, 전기공사업자가 현장의 지휘통제 하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현장 일이 바쁘면 이쪽 일을 미루게 된다. 결국 마감이 완료된 후에 이를 다시 뜯어내고 전기공사를 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당연히 마찰이 증가하며, 하자책임 구분도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주계약자 공동도급’이나 ‘공사용자재 발주자 구매’와 같은 제도까지 들고 나왔다. 아예 하도급자를 뛰어넘어 자재업체를 선정할 권한까지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들은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원하도급 계약과 같은 사법상(私法上)의 법률 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서 규율하고, 발주자는 원칙적으로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특별히 건설 분야에서 하도급 보호 규정을 갖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만약, 발주자가 하도급자를 지명한 경우에는 하도급자의 부실시공이나 공기 지연에 대한 리스크를 발주자가 직접 떠안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리발주나 주계약자 방식이 가져오는 가장 큰 폐해는 기존의 하도급 협력관계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현장 지휘관이 원하는 하도급자나 자재업체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종합건설업체의 하도급협력업체는 정예 멤버로 구성된다. 원가경쟁력이 있고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가 선별되어 등록된다. 공사 과정에서 부실한 시공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협력업체에서 탈락한다. 그런데 종합건설업체가 하도급자를 선정하지 못하거나 입찰용 하도급자를 찾게 되면 지휘통솔이 어려워진다.

자재도 마찬가지이다. 자재는 소요의 품질을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발주자가 해당 조합을 통하여 자재업체를 선정할 경우, 현장 바로 옆에 있는 업체를 놔두고 원거리 업체가 납품하거나 혹은 처음보는 업체에서 납품이 이루어진다. 당연히 지휘통솔이 어려워지고, 책임이 분산되면서 품질에 대한 시비거리도 증가하게 된다.

최근들어 종합건설업체에게도 직접시공 능력을 강요하는 추세이지만, 종합건설업체의 가장 큰 책무는 무엇보다 일괄도급업자로서 주어진 날짜에 발주자와 계약한 목적물을 하자없이 납품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공사현장은 지뢰밭의 연속이다. 언제 어디서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며, 설계도면이나 구조계산서를 이해하고, 수많은 공사참여자를 동원하여 공사현장을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근원이 바로 현장에서의 지휘권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휘권은 바로 하도급이나 자재업체를 선정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권한에서 나온다. 당연히 공사의 품질을 확보하고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려면 지휘자의 지휘권을 박탈해서는 안된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의 상생이나 경제민주화 정책이 중소기업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리발주나 주계약자 공동도급 등의 환경 하에서는 선별 기능이 약화되면서 시장매커니즘이 실종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기술개발의 필요성이 상실된다. 일례로 전기공사의 입찰참가자는 평균 5백개사 수준이며, 지난 해에는 경쟁률이 6,200 대 1에 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결코 경쟁력있는 업체가 나올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우량한 하도급업체나 자재업체로서는 역차별을 받게 된다. 즉, 하도급 보호도 중요하나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더 큰 시대적 소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면 하도급업체 보호 등 경제민주화는 어떻게 달성되어야 할까? 그 해답은 선진국과 같이 원도급자의 지휘권을 보장하되, 입찰시에 원도급자의 시공체제를 확인하거나 원하도급간 장기 협력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경쟁력있는 하도급업체가 시장에서 우대받고, 장기적인 파트너쉽을 통하여 품질이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정부가 우려하는 하도급 과정의 불공정 행위는 하도급 법령이나 입찰시 불이익 등을 통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부연하지만, 전투에서 패전한 경우 책임을 물으려면 소대장의 지휘권을 박탈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