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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지역 인프라 실태조사의 의미와 과제

보도일자 2018-05-02

보도기관 건설경제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건산연에서는 지난 1년간 대한건설협회와 건설공제조합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지역 인프라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4월 23일부터 지난 한주 동안 8개 지역(경기, 강원, 충북, 대전, 경북, 전남, 광주, 제주)에서 순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다른 지역들도 5월 11일까지 개최할 계획이다. 필자도 지난 주에는 매일 지역 세미나에 참석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소감을 말하기에 앞서 이번 연구의 의미부터 보자.

오랫동안 우리 정부는 완공위주의 집중투자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다 보니 신규 인프라 사업의 발굴보다는 기존 사업의 마무리에 더 치중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국토교통부의 신규 사업 예산만 보더라도 많게는 5,000억원대에서 적게는 1,000억원대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383억원으로 급감했다. 이처럼 신규 사업이 크게 줄어든 이면에는 우리 인프라가 선진국 수준이고 충분하다는 생각을 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실태조사 결과 서울을 제외한 15개 지자체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업 중 핵심적인 사업만 1,244건이 있었고, 사업비는 442조원 규모였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대표적 SOC 사업인 교통·물류 인프라였다. 해마다 건설업계에서는 인프라 투자확대를 요구해 왔는데,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해야 할지 지역별 리스트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실태조사는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이같은 작업은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정부가 수행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인프라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전국 8,547명을 대상으로 올해초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인프라 시설이 삶의 질이나 지역경쟁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인식했다. 반면에 현재의 성능이나 안전도 수준은 낮고, 정책과 투자 수준은 더욱 충분치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인프라에 대한 투자 수준은 16개 시·도 모두 ‘보통’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결과는 우리 정부의 인프라 정책이나 투자수준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프라 정책이나 투자 수준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확대해야 한다.

지역 순회세미나를 다녀보니 모두가 인프라 투자 확대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인프라 보다 사회복지 투자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규모 신규 인프라 사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사안도 많았다. 인프라가 지역민의 안전이나 삶의 질과 직결된다는 인식과 더불어 노후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또한 인프라 투자 확대를 위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제도나 비용편익(B/C) 분석과 같은 경제성 중심의 타당성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지방재정의 취약성을 감안하면 중앙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제시된 인프라 사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고, 재원조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 압도적이었다.

지역 순회세미나에서 느낀 아쉬운 점도 있다. 전문가들조차 비교의 기준을 ‘과거’나 ‘평균’에 두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과거에 비하면 이 정도 인프라 수준이면 괜찮지 않나, 전국 평균에 비하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나 하는 식의 비교도 꽤 있었다. 하지만 눈높이를 ‘미래’나 ‘경쟁 시·도’ 혹은 ‘글로벌’에 둔다면, 지금 수준의 인프라로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역민의 안전이나 삶의 질과 인프라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이 높은 것은 좋다. 여기에 더하여 지역경제의 경쟁력이나 산업의 생산성과 인프라의 연계성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또한 재원조달 문제는 중앙정부의 지원확대로만 해결할 수 없다. 지자체도 민간자본의 활용을 고민해봐야 한다.

지역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앞으로 해야 할 과제도 많이 떠올랐다. 이번에 실시한 지역 인프라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좀더 큰 차원의 국가인프라계획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있다. 광역 시·도 차원의 개별 인프라 프로젝트를 국가경제나 글로벌 차원에서, 나아가 통일을 대비한 차원에서 연계하고 확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의 수요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수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스마트 인프라 같은 새로운 수요를 반영한 프로젝트 발굴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노후 인프라와 신규 인프라는 투트랙으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노후 인프라 투자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지자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신규 인프라 사업은 지금 발굴해서 제안하더라도 실제 투자가 이루어지기 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그렇더라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지역경제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규 인프라 사업은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제안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할 법과 제도의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예비타당성조사제도나 경제성 평가 중심의 타당성조사제도는 지역 인프라 사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대상이나 기준의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인프라 정책이나 투자 수준을 ‘국민의 눈높이’로 끌어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