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언론기고

집값 파동 신도시로 풀자

보도일자 2002-09-03

보도기관 조선일보

강남 집값이 불타 오르고 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재건축 깃발이 나부끼고, 분양 현장에는 떴다방이 진을 치고, 아줌마들은 끼리끼리 가격담합을 하고, 집 없는 서민들은 중개업소를 드나들며 우왕좌왕하고, 전세입자들은 마음만 조이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 연초부터 여덟 차례나 대책을 쏟아 놓았으나, 상투인가 싶던 집값은 꾸준히 치솟기만 하고 있다. 강남부자들에게 불과 몇달 사이 수십 조에 이르는 돈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생각해 보자. 갑자기 강남의 땅이 더 비옥해졌는가? 아파트들이 덩치가 커졌는가?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었는가? 아니다. 시중에 넘치는 돈이 투기성 기대심리와 엇물려 부풀린 악성 거품인 것이다. 이런 유형의 자산 인플레이션은 과소비를 촉진하고 계층간의 소득분배를 그르친다. 윈-윈(Win-Win)게임이 아니다. 비강남권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대단하다. 따라서 이런 거품은 우리 경제의 덫이 되고, 사회의 독(毒)이 된다. 얼마 전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부동산거품경계론’을 피력한 바 있다.

이 같은 집값 파동에 대해 원인분석이나 처방도 제각각이다. 금리인상과 세제개편 등이 거론되고, 특수 목적고를 분산시키자는 대책도 나온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칼을 갈고, 건교부와 서울시는 재건축 요건을 강화한다고 한다. 무리가 있더라도 이번만은 강도높은 대책이 나와야 할 터인데, 당국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복지부동인지. 여러 가지 처방이 있겠으나 이 기회에 도시정비 차원에서 장기적인 몇 가지 대안을 검토해 보자.

첫째, 도시정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특히 최근 집값 파동의 주범인 ‘재건축’은 아주 잘못된 정책이다. 그린벨트를 풀면 땅값이 뛰듯이 저밀도 지구를 고밀도로 바꾸면 당연히 집값이 뛰게 마련이다. 10년 가까이 밀고 당기다가 지난 선거 직전 사업승인을 해 준 5개 저밀도지역에 몰린 돈만도 15조 가량 된다고 한다. 누가 개발이익을 챙겼는가? 아마도 투기꾼들이 몇 차례 올리고 먹고 되팔고 빠져나가고 하는 머니게임을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래서 낡아빠진 10여평 아파트가 6억원까지 되었다. 강남판 마술이다. 주상복합이니 오피스텔이니 다가구주택이니 하며 용적률을 엿가락처럼 허용해 준 것도 강남의 부동산 잔치에 일조를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남과 강북간 개발격차가 심화되고 강남이 ‘특구화’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강남 이외 지역에도 눈을 돌려 도시 내에 각종 생활환경이 고르게 개발되도록 하고, 재개발과 재건축 등 도시재생의 틀을 담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수도권 곳곳에 신도시를 건설하여 광역적으로 정비하자. 서울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과밀도시다. 서울의 기능과 인구의 분산을 유도하고 주택수요를 분산시킨다. 서울 근교에 강남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을 여기저기 개발하자는 것이다. 왜 서울 그리고 강남뿐인가?

90년대 초 분당·일산 등 신도시 개발 이후 정책당국은 ''신도시 기피증''에 걸려서, 공공부문에서의 택지 공급은 거의 중단되었다. 정부가 손놓고 있는 사이 넘치는 주택수요는 수지, 구성, 죽전, 광주(廣州), 양평, 김포 등으로 확산되어 난개발을 유발하였다. 그래서 교외지역은 엉망이 되었다. 민간개발은 필연적으로 난개발이 될 수밖에 없다. 교외의 꿈을 안고 나갔던 사람들이 요즘은 교통, 편의시설 등의 불편으로 다시 강남으로 회귀하고 있다.

애초부터 학교, 도로, 철도 등 편의시설과 주택단지를 유기적으로 계획하여 ‘신도시’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면 서울의 기능도 분산시키게 되고 주택공급도 늘어난다. ‘계획된 택지''를 공급하는 것은 공공의 몫이다. 80년대 말의 집값 파동도 분당 건설로 막지 않았는가?

마지막으로, 주택관련 세제를 바꿔야 한다. 현재 우리는 주택의 취득과 이전단계에는 세율이 높으나 소유단계에는 엄청나게 낮다. 재산세, 종합토지세를 시가에 맞게 올려서, 주택 과소비를 막고 투기화를 억제하는 것도 이번에 반드시 관철해야 할 과제이다.

                                                                                   (李建榮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