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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재건축과 리모델링

보도일자 2002-09-18

보도기관 일요부동산신문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가 과열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  10여평에 불과한 아파트가 5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곳도 있다.  급기야 정부가 무분별한 재건축을 규제하기 위하여 강도높은 대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재건축의 대안으로 리모델링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건축물의 라이프사이클상에서 보면 재건축은 건물의 구조적, 기능적 수명이 다했을 때 시행된다.  준공 이후 재건축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유지, 관리 단계에 해당된다.  즉, 건물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건물을 유지하고 보수하고 성능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하게된다.  리모델링은 바로 이 유지, 관리 단계에서의 적극적인 건축물 개선활동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아파트 실태를 보면 이 유지, 관리단계의 활동이 거의 유명무실하다.  세대별 실태 개선에는 적극적일지 몰라도 건물 또는 단지 전체의 체계적인 유지, 보수와 개선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수선계획과 특별수선충당금 같은 체계적인 유지관리를 위한 제도가 있기는 하나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재건축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재건축을 하게 되면 별도의 비용 부담없이 보다 큰 평수의 주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적률은 이러한 이익실현의 핵심적 메커니즘이다.  용적율이 낮은 저밀도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모든 재건축조합들이 보다 높은 용적율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당국과 밀고 당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상적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의 최소 수명은 50년 이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준공된지 15년 정도만 지나면 재건축 대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아파트 주민들은 가능하면 보다 빨리 재건축 되기를 원한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구조물의 잔존가치보다는 재건축으로 부터 실현 가능한 이익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파트가 제대로 유지관리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오히려 재건축 허가를 하루라도 빨리 받기 위해 문제가 생겨도 방치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아파트 수도관에 녹물이 나와도 그리고 주차난에 짜증이 나도 재건축을 생각하면서 그냥 참고 지내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나라 아파트의 재건축과 유지관리 행태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되기도 어렵다.  지금의 재건축 방식은 만성적인 주택 부족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에 용적률이 라는 유인책을 제공하여 손쉽게 주택을 공급하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으로 득이 되기보다는 더 큰 손실을 유발한다.  주택 공급으로 부터 얻는 이익보다 고밀화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가 더 심각하게 제기된다.  그리고 최근의 실상에서 볼 수 있듯이 돈 많은 투기꾼들의 투기대상이 되어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

최근 신도시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부족한 주택공급은 정부의 체계적인 택지개발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크게는 국토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반면, 도시내 기존 주거지역들은 가능한 한 체게적으로 유지관리하고 개선시키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즉 보다 적극적인 리모델링 정책을 통하여 우리의 기존 주거환경을 보다 친밀하고 쾌적하게 가꾸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주택 또는 도시관리 정책에서 리모델링은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