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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강북개발 신중한 접근을

보도일자 2002-10-28

보도기관 국민일보

과연 건설시장(市長)인가? 이명박 시장이 등장한 지 채 넉 달도 안 되지만 청계천 복원, 마곡지역개발, 강북개발 등 굵직한 건설사업들이 줄지어 발표되었다.

강북개발에 초점을 맞춘 뉴타운의 그림은 화려하고 의욕이 넘친다. 서울시가 직접 나서서 재개발의 그림을 그리고, 뉴타운이란 말에 걸맞게 광역적으로 서울시 전역을 차례로 뜯어 고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 것은 반가운 일인가?

70년대 초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서울은 쌍핵 구조로 달라졌다. 지금 강남 인구는 500만 명이 넘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시가지 강남과 구시가지 강북 간의 개발 격차가 벌어졌다. 이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강북의 ‘아파트촌화’가 필요한 대책일까?

뉴타운 계획을 보자. 주거 중심으로 계획된 길음 뉴타운은 대표적인 달동네로 이미 산허리를 따라 초고층 아파트 위주의 황당한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도심형의 왕십리 지역은 주택, 시장, 공장, 창고 등이 혼용되어 있는 지역으로 주상복합 등을 지어 부도심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나 이해집단이 복잡한 만큼 사업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은평 뉴타운은 그린벨트 지역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키로 한 것은 취락정비를 도와 낙후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지 이처럼 대규모 신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린벨트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가슴 아프다.

나는 서울의 강북을 사랑한다. 내가 살던 좁은 골목길, 역사가 밴 덕수궁 돌담길, 가회동 한옥과 인사동 풍경도 사랑한다. 그러나 이 때문에 강북은 낙후되었다. 공간에 대한 감각과 정서가 시간과 함께 달라졌다. 보행 중심 도시에 자동차 중심의 생활 행태가 들어섰다. 게다가 도시계획 기능이 느슨해진 틈에 집들마저 난개발식으로 들어섰다. 무허가 공장이 들어서고, 시장터가 생기고, 볼썽사나운 다세대 다가구촌을 이룬 것은 정부의 무계획 탓이다. 여기에 주차질서마저 엉망이다. 당연히 새 요구에 맞도록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싹쓸이’ 철거 재개발이 실패한 교훈은 많다. 그곳에 살고 부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근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소위 중산층이라는 더 잘사는 사람으로 바꿔 놓겠다는 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도려낼 수밖에 없는 노후한 구역은 철거하고 재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강북 전체를 단계적으로 모두 도려내고 새로운 뉴타운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재개발은 힘들다. 소위 경제학자들이 자주 비유하는 ‘죄수들의 딜레마’가 사업을 지연시킨다. 규모가 커질 경우 토지수용, 조합형성, 개발이익의 분배, 정부의 지원 등이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강남의 ‘저밀도’를 ‘고밀도’로 ‘재건축’ 하면 돈잔치가 벌어지지만, 달동네를 재개발하는 데는 그 같은 인센티브가 없다.

강북 개발의 핵심은 국제도시로서의 경쟁력 강화와 도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를 다핵화하고 다양한 공간, 적절한 밀도와 도시 기능의 분담에 대한 마스터 플랜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강북의 도심과 부도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도심 재개발이 먼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을지로와 마포 등지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도심 재개발사업은 80년대 중반 이후 강남바람 탓으로 지지부진해 왔다. 우선 도심을 살리고 주거지역을 정비하는 것이 순서이다.

주거지역의 개발은 전면적으로 아파트 숲으로 바꾸기보다 도로를 확충하고 학교, 공원, 주차장 등 도시기반시설을 꾸준히 확보해 주민들 스스로 새로운 주거환경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역 특성에 맞고 또 사업 추진이 수월한 규모로 다양하게 추진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재개발은 ‘철거’와 ‘아파트화’라는 공식에 너무 얽매여 왔고, 또 사업성에 치중해 고층화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에 가면 노상주차 한 대 없이 깨끗한 이면도로와 아늑하고 다양하게 재개발된 주택가를 볼 수 있다.

강북의 문제는 어쩌면 우리나라 모든 도시의 구시가지가 갖는 문제이다. 어느 도시건 고속성장기에 허겁지겁 양적으로만 팽창해 왔다. 그래서 낡고 부실하고 난개발되었다. 이제는 도시를 다듬고 리모델해 갈 때이다.

아마도 강북 개발은 다른 도시의 모델이 될 것이다. 시간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며 나가야 할 것 같다. 한 번 망친 도시를 되살리기는 힘든 일이다.

                                                                                  이건영(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