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를 읽으면 한국이 보인다
보도일자 2019-04-03
보도기관 이데일리
모든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역사가 있다. 지금 당면한 문제들 모두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비슷하거나 동일한 사례가 많다. 또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우리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도, 다른 나라가 먼저 겪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역사건, 외국 역사건 간에 폭넓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최저 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문득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본산이라 할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지, 당시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의 저서 ‘노예의 길’(1944)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우리나라에 서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기 전에 발간된 책이다. 1940년대의 영국도 최저 임금이나 소득 보장, 분배적 정의, 대기업 독점,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에크는 영국에서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조직화하여 사회주의적 이상을 달성하려는 듯한 사상적 흐름이 커지고 있는데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개인주의나 자유주의는 영국과 베네룩스 3국을 비롯한 나라에서 상업의 성장과 함께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독일은 집단주의적, 군사적 사회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의 독일에서는 학교와 언론이 젊은 세대에게 ‘상업적 기업가 정신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이윤 창출을 부도덕한 것으로, 100명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착취로 보면서 같은 수의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명예로운 것’으로 보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보장된 봉급’을 받는 관료가 되는 것을 창업하는 것보다 더 선호한다고 해서 나무랄 수도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이에크는 경제적 보장, 특히 특정한 가격이나 임금의 보장은 일부 계층에만 해주고 나머지 계층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한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보는 저소득층도 분명히 있지만, 자영업자나 실직한 저소득층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일정한 생활수준이나 소득을 보장해 주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가격, 임금, 개인소득 대신에 급격하게 변동하는 것은 ‘고용과 생산’이라는 지적도 탁월한 통찰이다. 현재 우리의 고용 사정은 ‘참사’라고 할 정도로 높은 실업률과 낮은 취업자 증가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생산·소비·투자 지표는 지난 1월에 일시 회복되긴 했지만, 경기 동행지표와 선행지표의 동반하락세는 장기화하고 있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을 전적으로 최저 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 성장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정부가 가격과 임금을 명령과 규제로 통제하게 되면 기업의 고용과 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하이에크는 당대의 사람들이 “우리가 가장 중시했던 이상을 추구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작년 말 소득분배 상황을 보자. 작년 4분기에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전년대비 18%나 급감했지만 상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10.4% 증가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분명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나 의도와 상반되는 것일 게다. 왜 이렇게 의도와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이념적 편향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케인즈와 같이 정부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의 시각과는 다른 점이 많다. 아마도 마르크스 경제학자라면 더욱 심하게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론이나 사상의 옳고 그름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론과 사상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이에크의 이론과 사상은 우리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것 같다. 다시, 하이에크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최저 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 성장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문득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본산이라 할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었는지, 당시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로서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이에크의 저서 ‘노예의 길’(1944)을 다시 한 번 읽어봤다. 우리나라에 서구적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도입되기 전에 발간된 책이다. 1940년대의 영국도 최저 임금이나 소득 보장, 분배적 정의, 대기업 독점,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국가의 역할 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에크는 영국에서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경제를 조직화하여 사회주의적 이상을 달성하려는 듯한 사상적 흐름이 커지고 있는데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개인주의나 자유주의는 영국과 베네룩스 3국을 비롯한 나라에서 상업의 성장과 함께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반면에 독일은 집단주의적, 군사적 사회의 성격이 강했다. 당시의 독일에서는 학교와 언론이 젊은 세대에게 ‘상업적 기업가 정신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이윤 창출을 부도덕한 것으로, 100명의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착취로 보면서 같은 수의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명예로운 것’으로 보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 사회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보장된 봉급’을 받는 관료가 되는 것을 창업하는 것보다 더 선호한다고 해서 나무랄 수도 없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하이에크는 경제적 보장, 특히 특정한 가격이나 임금의 보장은 일부 계층에만 해주고 나머지 계층의 지위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한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혜택을 보는 저소득층도 분명히 있지만, 자영업자나 실직한 저소득층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것과 같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일정한 생활수준이나 소득을 보장해 주려고 하면 결과적으로 가격, 임금, 개인소득 대신에 급격하게 변동하는 것은 ‘고용과 생산’이라는 지적도 탁월한 통찰이다. 현재 우리의 고용 사정은 ‘참사’라고 할 정도로 높은 실업률과 낮은 취업자 증가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생산·소비·투자 지표는 지난 1월에 일시 회복되긴 했지만, 경기 동행지표와 선행지표의 동반하락세는 장기화하고 있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을 전적으로 최저 임금 인상이나 소득주도 성장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정부가 가격과 임금을 명령과 규제로 통제하게 되면 기업의 고용과 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하이에크는 당대의 사람들이 “우리가 가장 중시했던 이상을 추구했더니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작년 말 소득분배 상황을 보자. 작년 4분기에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전년대비 18%나 급감했지만 상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10.4% 증가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분명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나 의도와 상반되는 것일 게다. 왜 이렇게 의도와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이념적 편향성이 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케인즈와 같이 정부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의 시각과는 다른 점이 많다. 아마도 마르크스 경제학자라면 더욱 심하게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론이나 사상의 옳고 그름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론과 사상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하이에크의 이론과 사상은 우리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것 같다. 다시, 하이에크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