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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약발 안받는 신도시 선정

보도일자 2003-05-14

보도기관 경향신문

얼마 전 신도시 후보지가 전격 발표되면서 우리는 10여년 만에 또다시 신도시 개발에 당면해 있다. 선진 외국은 한번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20~30년씩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불과 10여년의 짧은 기간에 두 번의 신도시 개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신도시 개발 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주택의 절대적 공급 부족이 현안 과제였다. 따라서 당시 신도시 개발은 대규모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떠한가?

-한국 현실에 맞는 해법 모색을-

이번 신도시 개발은 지난해 강남지역 집값이 급등한 것과 관련해 강남 수준의 신도시 개발이 특정 지역의 주택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막상 6개월 만에 발표된 후보지는 뜻밖에도 김포와 파주였다. 물론 행정수도 이전 등 정책 변수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초 강남 수준의 신도시 개발이라는 취지는 이번 신도시 발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강남 아파트 가격이 다시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신도시의 입지를 놓고 이렇다 저렇다 불평이 많다. 신도시의 약효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강남 집값의 가장 큰 지지대는 앞으로는 강남을 대체할 주거단지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7월부터 강화되는 재건축 규제 또한 강남 주택의 희소성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믿음이 확대되고 있다.

지금 강남지역은 투자 및 투기세력은 물론 미래 강남지역 입성을 위한 사전 매입 수요까지 겹쳐 모두들 ‘주택 사기’에 혈안이 돼 있다. 정부는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겨냥하고 신도시를 발표한 것일까. 강남지역 집값과는 무관한 신도시 발표였는가?

우리가 종종 신도시 개발의 모델로 삼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는 각기 특징이 있다. 영국은 신도시의 자족적 기능을 강조하여 런던에서 그린벨트 외곽으로 100㎞ 정도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개발했다. 더불어 런던 도심의 주거 환경과는 다른 전원적인 도시 건설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와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파리에서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근교에 신도시를 개발했다. 또한 파리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용이한 지역에 대규모 서민 주거단지를 개발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외곽의 신도시를 파리권의 성장축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통점도 있다.

그것은 두 국가 모두 도시 외곽의 신도시에는 중상층을 겨냥한 주택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이들 국가의 신도시는 성공의 사례로, 혹은 실패의 사례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 국가의 신도시 정책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제는 무엇이고, 우리의 해결방법은 어떠해야 할까? 우리나라 신도시 개발의 목적은 선진국과 다를 수 있다. 정부가 신도시 개발 때마다 외치는 ‘자족적 신도시’도 올바른 목적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신도시 개발 목적은 아주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도권내 적정 균형을 이루는 것, 그래서 과도한 수요 집중을 분산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혹자의 말대로 ‘강남 수준의 신도시 개발’은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사회지도층이며 부를 소유한 계층이 왜 도심에서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 살겠는가.

그러나 강남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소득이 미처 뒤따라가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자식 교육 하나 때문에 그 지역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강남과 같은 주거여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강남 수준의 신도시’를 해석할 때 바로 이러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강남 수준 주거여건 고려해야-

오래 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이제 신도시는 건설교통부만의 물리적인 도시 건설이 아니라고 지적해왔다. 우리의 교육정책, 산업정책, 지역정책이 모두 망라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나 우리의 신도시는 ‘자족적 신도시 개발’과 ‘주택의 양적 공급’에 무게가 실려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와 사정이 다른 외국의 신도시 개념을 단편적으로 도입하여 ‘그림만 좋은’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이제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외국에서는 사례가 없더라도 우리의 여건과 사정에 맞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리에게 맞는 신도시 개발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