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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최저가 낙찰제와 시민단체

보도일자 2003-05-22

보도기관 일간건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단체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몰라보게 강화됐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이미 정부의 정책과제로 채택됐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 문제시될 것은 없다. 우리나라처럼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식의 정책결정이 지배적이었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위상이 높아지면 그만큼 책임도 커진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정부정책은 하나같이 시민생활과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에는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깊이 있는 연구와 폭넓은 여론수렴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책결정의 당사자인 정부가 아니라 할지라도 정책대안을 제안하는 자는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신중한 자세와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시민단체라고 해서 여기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특히, 시민단체의 제안이 곧바로 정부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진 현 상황에선 정책대안 제시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최저가 낙찰제만 해도 그렇다.

모 시민단체는 최저가 낙찰제를 당장 확대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부예산의 절감과 건설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그리고 국제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맞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들의 주장대로 최저가 낙찰제는 국제표준이어서 많은 나라가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정부예산을 절감할 수 있고 건설업의 국제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도 일면 정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최저가 낙찰제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최저가 낙찰제는 덤핑에 따른 부실시공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행보증, 저가심의 등 부실 방지장치를 마련한 연후에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부실시공을 방지하는 장치가 현재로서는 매우 미흡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최저가 낙찰제를 확대하면 정부예산절감 등의 효과보다 부실시공 등의 부작용을 키울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 않아도 부실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판에 이를 더욱 부채질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도 최저가 낙찰제를 확대 도입하되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도 이러한 방침에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시민단체도 기왕의 주장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탄력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최저가 낙찰제의 확대시행을 계속 주장하기에 앞서 부실시공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려를 무시하고 정책을 관철했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의 책임논란에서 시민단체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높아진 위상만큼 커진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책임 있는 자리에서 정책수단을 제시할 때에는 보다 전문적이고 균형 잡힌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