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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한국의 건설문화와 제도

보도일자 2003-06-03

보도기관 한국건설신문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건설정책이나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턴키제도, 최저가 낙찰제도, PQ제도, 적격심사제도, 실적공사비 적산제도, 부실방지제도, 부패방지제도 등 날이면 날마다 건설정책이나 제도 관련 논의가 빠지는 법이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제도개선 방안을 내느라 회의, 세미나, 워크샵, 토론회를 연일 개최하는 바람에 요즘에는 회의장소를 잡기조차 쉽기가 않다. 과거 YS나 DJ정부 초기에도 그랬던 것 같다.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제도개선''이란 이름하에 이루어진 건설제도의 ‘변경'' 건수는 아마 수십건을 넘어 수백건, 수천건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엄청난 횟수의 제도 ‘변경’을 ‘개선''이란 이름으로 추진했는데, 건설제도가 정말로 ‘개선''되었는가?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건설제도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건설문화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보자. 비단 건설업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전반적으로 획일적인 평등주의 의식이 만연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능력의 차이나 역할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운찰제(運札制)''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적격심사제도는 이같은 획일적 평등주의 의식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시공경험, 기술능력, 경영상태의 차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가격만으로 수주경쟁이 이루어지는데, 그 가격도 경쟁문화가 아니라 온정주의적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탓에 일정 낙찰률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아예 고정시켜 두었다.

이런 제도에서 가격을 한 개만 알려주면 모두가 똑같은 가격을 제출하게 되니까 복수예가를 15개 만들어 4개를 추첨하여 예가를 결정한다. 형식적인 객관성과 투명성은 있어 보이지만, 공사수주가 로또복권 당첨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동일 그룹간에 낙찰확률이 동일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공사물량은 ‘평등''하게 배분될 것이며, 건설산업은 ‘하향평준화''를 지향하게 된다.

법·제도 만능주의도 건설문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건설업계 내부에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문제만 생기면 정부에 달려간다.

예컨대, 건설사업관리(CM)와 같이 새로운 발주방식을 도입한다고 치자. 제일 먼저 한 것은 건설사업관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용어의 정의''부터 건설산업기본법에 먼저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법에 규정된 ‘용어의 정의''가 맞는 지 틀리는 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어 왔고, 누가 능력있는 지를 판단한다는 명목으로 능력평가 및 공시제도를 도입하여 금년 8월말까지 공시할 예정이란다.

일부에서는 아예 건설사업관리 활성화를 위해서 몇백억 이상 대형공사에 무조건 건설사업관리 방식을 도입하도록 법에 강제조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이처럼 법·제도 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기술자가 필요없다.

어떤 발주방식이나 입찰방식을 적용하고, 어떤 낙찰방식이나 계약방식을 적용할 것인지가 모두 법령에 명시되어 있고, 그것도 객관성을 확보한답시고 공사규모만으로 기준을 정해 놓은 상황에서 건설기술자의 전문적인 판단은 필요치 않다. 건설기술자의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면, 당연히 건설기술자도 건설회사나 정부에서 대접받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문화도 뿌리깊다. CM이나 턴키제도를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는 해외건설시장에서 CM·턴키발주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에서도 CM·턴키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 논리라면 CM·턴키제도 자체도 국제표준에 맞게 도입해야 국제경쟁력 강화에 도움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국제표준적인 CM·턴키제도와 한국 CM·턴키제도의 차이를 설명해주고, 국제표준적인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외국은 외국이고 우리는 우리''라면서 우리식 제도를 강변한다.

경쟁부재와 획일적 평등주의 문화, 법·제도 만능주의, 신토불이 문화가 뿌리박고 있는 사회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건설제도 개선은 이같은 문화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改惡)''되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도 많다. 이럴 때의 명분은 항상 ‘한국적'' 현실 내지 ‘건설업계''의 현실을 감안하여 거기에 맞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건설제도는 건설문화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건설문화의 낙후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거꾸로 건설제도를 통해 건설문화를 바꾸거나 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도개선의 결과가 후진적인 한국 건설문화를 더 공고히 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