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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도로 건설 아직 줄일 때가 아니다

보도일자 2005-05-20

보도기관 조선일보

도로부문 정부예산이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 금년도 예산이 7조6000억원 규모에 머무는가 싶더니 내년에는 6조원대로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건설교통부와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이달 말에 확정될 예정인‘국가재정운용계획’의 도로 부문 예산을 6조원 규모로 축소하는 안(案)이 협의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국가 물류의 혈맥(血脈)인 도로 예산이 2003년의 9조원 대에서 불과 3년 만에 3조원 가까이 축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건설 중인 도로의 완공이 몇 년씩 지연됨은 물론 신설은 엄두도 못 낼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은, 향후 5년의 중장기 정부 예산 계획에서도 도로 예산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투자는 그 성격상 미래 지향적인 선(先)투자가 바람직하다. 물류의 병목 현상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의 투자는 효용성이 반감된다. 단기간에 그 확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추가 비용 부담도 막대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비싼 대가를 치르며 그 경험을 한 바 있다. 지난 1980년대에 교통 인프라 투자를 축소했다가 엄청난 국민 불편과 물류난에 부딪혔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부족한 도로 시설 등을 확충하는 과정에 소요된 예산은 당초보다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이러한 정책 오류의 전철을 밟으려는가.

한쪽에서는 우리나라의 도로 보급이 충분하게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이후 대폭 확충됨으로써 국토 면적당 도로 연장이 OECD 국가 중 중위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 국토 면적당 도로 연장은 국토가 좁은 우리 나라에 가장 유리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도로 연장은 1.9㎞에 불과하다. OECD 국가 평균인 20㎞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자동차 1000대당 도로 연장 역시 6.4㎞로 OECD 국가 평균 30㎞의 5분의 1 수준이다. 국토 면적과 인구를 감안한 국토 계수당 도로 연장을 살펴보면 30개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세 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500만대가 넘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으며, 2010년경이면 2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른 교통혼잡 비용은 2002년도에 이미 2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 1991년에 12.0%였던 GDP 대비 물류비 비중이 2001년에 12.4%로 높아진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로 등 교통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한 국부(國富) 손실이 심각한 지경이다.

그렇다면 물류비의 65%를 차지하는 수송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국내 여객·화물 수송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도로의 지속적인 확충이 불가피한 대안이다. 수송비 비중을 1%포인트만 낮추더라도 연간 4조5000억원의 기업 부담이 줄어든다. 동북아 물류 중심 국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해마다 4000~5000㎞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국가나 개인의 미래 가치는 오늘의 투자로부터 가늠된다. 국토 중추 신경망인 도로 투자를 급속하게 줄이려는 예산 정책은 풍요로운 미래를 포기하는 악수(惡手)다. 일부 정책 입안자들이 주장하는 민간 자본 유치에도 현실적 한계가 뚜렷하다. 단기적으로도 도로 건설 투자의 일자리 창출 및 경기 진작 효과를 간과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