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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최저가 낙찰제 대신 최고 가치(Best Value) 지향

보도일자 2005-07-13

보도기관 한국건설신문

정부계약제도 개선을 위한 작업이 한참 진행중이다. 최저가 낙찰제 확대 여부나 저가심의제 개선이 특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어떤 시민단체는 오래전부터 최저가 낙찰제를 전면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입찰가격만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이른바 ‘순수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업계의 수익성을 저하시키고, 부실공사를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현재와 같은 제도적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바꾸긴 바꾸어야 겠는데,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본다.

잠깐 눈을 밖으로 돌려서, 우리보다 앞섰다고 생각되는 나라에서는 어떤 입낙찰제도를 운영하고 있는지를 보자.

미국은 1994년 이후 최고 가치(Best Value)를 지향하는 쪽으로 조달정책의 기본방향이 바뀌었다. 지난 6월에 필자가 방문했던 미국 연방조달청(GSA)의 한 고위 공직자는, 현재 연방조달청 계약의 약 20%만 최저가 낙찰방식이 적용되는 공개경쟁입찰(Sealed Bidding)로 운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협상에 위한 계약(Contracting by Negotiation) 방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발주방식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턴키’라고 부르는 디자인빌드 방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미 미국 연방정부 발주공사의 50% 이상이 디자인빌드 방식으로 발주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최저가 낙찰제를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영국의 지방정부는 2001년부터 최고 가치(Best Value)에 기초한 공공서비스 제공이 의무화되었다.

중앙정부도 투자효율성(Value for Money) 확보를 위한 민간투자사업(PFI), 프라임계약, 파트너링 등과 같은 새로운 계약방식을 최저가 낙찰제를 대신하여 도입했다. 작년말에 필자가 방문했던 영국 도로공사는 가격평가없이 100% 기술능력에 대한 심사만으로 낙찰자를 결정하고 있었다.

일본도 최저가격 자동낙찰방식을 탈피해 가고 있다.

가격외에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낙찰자를 선정하는 종합평가낙찰방식의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최저가격 자동낙찰방식에서도 입찰가격의 적정성을 심사하여 낙찰자를 선정하는 저입찰가격조사제도의 활용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서는 새유럽연합지침(New EU Directives)에서 도입되어 2006년부터 유럽연합 가맹국에 적용될 경쟁적 대화(Competitive Dialogue)방식을 통한 시범사업도 수행하고 있다.

전세계의 입낙찰제도가 최저가 낙찰제에서 최고 가치(Best Value)를 지향하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이 같았다. 오랫동안 최저가 낙찰제를 운용해 보니, 시공비는 적게 들었어도 유지관리비가 높아서 결과적으로 총생애주기비용(whole life cycle costs)이 높아 투자효율성(Value for Money)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비용(cost)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최저가 낙찰제를 운용하다 보니 발주자와 계약자, 원도급자와 하도급자 등 공급사슬(supply chain)을 구성하고 있는 주체들간에 적대적 관계로 인하여 분쟁 급증, 공기 지연 등이 유발되었다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많다.

이런 구조에서는 발주자도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고, 건설업체의 수익성도 저하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불만족스럽더라는 것이다. 반면에 최고 가치(Best Value) 달성을 위하여 협상에 의한 계약, 인센티브계약, 파트너링이나 프라임계약, 디자인빌드계약을 확대해 보니, 발주자는 공사비, 품질, 공기 측면에서 투자효율성(Value for Money) 확보가 가능했고, 건설업체는 더 많은 수익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평가결과를 미국이나 영국에서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입낙찰제도의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건설업체가 아니라 발주자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 발주자나 정치권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최저가 낙찰제를 하루빨리 전면확대한다면, 그 폐해에 대한 인식을 전국민이 공유하게 되면서 입낙찰제도의 근본적인 전환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쉬워 질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너무도 뻔한 일을 꼭 겪어 본 다음에 바꾸어야 하겠는가.